양말 한 켤레의 완주

달리기 대회에서 기록과 순위보다 오래 기억될 장면이 나왔다. 2026년 10월 10일 서울 강서구 마곡에서 열린 ‘강서 허준런’에서 가양2동 자율방범대장 김영철 씨가 발을 다친 참가자에게 자신이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건넸다. 작은 배려는 한 참가자의 완주를 도왔고, 지역사회를 지키는 자율방범대의 꾸준한 봉사 정신도 함께 보여줬다.
반환점에서 발견한 참가자의 상처
김영철 대장은 이날 10㎞ 달리기 코스의 5㎞ 반환점에서 참가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주자들이 반환점을 돌아 다시 달려 나가는 가운데 한 중년 여성 참가자가 갑자기 신발을 벗고 발을 살펴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당 참가자는 양말을 신지 않은 채 달리고 있었다. 계속된 마찰로 발의 피부가 벗겨진 상태였다. 김 대장은 이대로 달리기를 이어가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별도로 준비한 구호 물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바로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김 대장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참가자에게 건넸다. 발의 상처를 본 순간, 양말이라도 신으면 통증을 조금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참가자가 아픔을 이겨내고 남은 코스를 무사히 달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
완주 소식에 맺힌 눈물
양말을 받은 참가자는 다시 신발을 신고 코스로 돌아갔다. 김 대장은 자신의 안내 위치를 지키면서도 참가자가 발 통증으로 경기를 포기하지 않을지 걱정했다.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가 자신이 건넨 양말을 신고 무사히 완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대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고 마음이 뿌듯했다고 밝혔다.
그가 건넨 것은 값비싼 물품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즉시 나눈 것이었다. 특별한 준비나 부탁 없이 상대의 어려움을 먼저 살피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참가자의 완주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됐다.
10년 넘게 이어온 생활 속 봉사
김영철 대장의 행동은 오랜 봉사 경험과 맞닿아 있다. 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35년간 근무했다. 직장에서 봉사활동을 장려하던 당시 자신에게 적합한 활동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거주지에서 퇴근 후에도 참여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 활동을 선택했다.
그가 자율방범대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2014년 무렵이다. 이후 10년 넘게 지역의 밤길과 생활 공간을 살피는 일을 이어왔다. 어둡고 외진 곳을 순찰할 때 주민들이 건네는 감사 인사는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됐다.
김 대장은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자신에게 큰 에너지를 줬다고 설명했다.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면서 더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선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고 말했다.
봉사는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의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김 대장의 경험이다. 허준런 현장에서 나온 즉각적인 배려 역시 오랜 시간 생활 속에서 봉사를 이어온 과정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일주일 세 차례 지키는 가양2동의 밤
가양2동 자율방범대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범죄 예방과 지역사회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대원들은 범죄 예방 순찰과 신고, 청소년 선도와 보호를 비롯해 지역 안전에 필요한 여러 활동을 맡고 있다.
순찰은 일주일에 세 차례 진행된다. 한 번 활동할 때마다 대원 5~6명이 조를 이루며, 오후 8시 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지역 곳곳을 살핀다.
- 주민 이용이 잦은 공원 순찰
- 주택가와 골목길의 안전 확인
- 어둡고 외진 구역 점검
- 범죄 예방 활동과 필요한 신고
- 청소년 선도와 보호 활동
대원들은 주민들이 늦은 시간에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공원과 주택가, 어두운 골목을 차례로 돈다. 주민들이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대에 자율방범대원들은 조끼를 갖춰 입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 평소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생활 공간을 세심하게 확인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강서구에서 축제나 각종 행사가 열릴 때에는 지원 요청을 받아 현장 봉사에도 참여한다. 강서 허준런에서 맡은 참가자 안내 역시 이러한 지역 봉사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생업과 함께 이어가는 책임
자율방범대원 대부분은 각자의 생업을 유지하면서 개인 시간을 내어 활동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쉬어야 할 저녁 시간이지만, 대원들은 지역 안전을 살피기 위해 다시 집 밖으로 나선다.
김 대장은 10년 넘는 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이번 허준런을 꼽았다. 자신은 작고 대단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여겼지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고 칭찬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은 그가 선행을 특별한 일로 내세우기보다 현장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반복해 온 순찰과 안전 활동도 같은 태도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자기 능력만큼 시작하는 봉사
김 대장은 봉사를 시작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어렵고 대단한 일로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각자의 능력과 형편에 맞게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취지다.
많은 시간이나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불편을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먼저 말을 건네며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 나누는 행동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허준런에서 양말을 건넨 일은 이러한 생활 속 봉사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운영 여건
현재 자율방범대 활동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있다. 가양2동 자율방범대원들은 개인 회비를 모아 운영비에 보태고 있다.
김 대장은 회비 부담이 봉사활동에 관심을 둔 주민들의 참여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봉사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비용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자율방범대원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활동 공간에 대한 바람도 밝혔다. 가양2동 자율방범대는 현재 임시 초소를 사용하고 있으며, 구암공원 인근에 새로운 초소를 마련하는 계획이 있다. 김 대장은 새 초소가 조속히 마련돼 대원들이 편안하게 모여 회의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원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활동하려면 주민들의 감사와 응원뿐 아니라 실제 순찰과 운영을 뒷받침할 여건도 필요하다. 지역 안전을 위해 개인 시간을 내는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운영비와 활동 공간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다.
행사장과 지역에서 이어지는 나눔
김 대장은 자율방범대 활동 외에도 강서구의 축제와 행사장에서 노래로 재능기부를 해왔다. 순찰과 행사 지원, 재능기부는 활동 방식은 다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역사회와 나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서 허준런에서 건넨 양말 한 켤레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줬고, 그 행동은 상처를 입은 참가자가 남은 코스를 달리는 데 도움이 됐다.
기록보다 오래 남은 배려
달리기 대회는 보통 기록과 순위로 결과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는 반환점에서 이뤄진 짧은 행동이 또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참가자의 불편을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양말을 내어준 김 대장의 판단과, 그 양말을 신고 결승선까지 달린 참가자의 완주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양2동 자율방범대원들이 밤마다 동네를 순찰하는 일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필요한 곳을 먼저 살피는 활동이다. 공원과 주택가, 어두운 골목을 확인하고 각종 행사 현장을 지원하는 과정이 주민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한 사람의 작은 배려는 다른 사람에게 완주할 힘이 될 수 있다. 허준런 참가자의 발을 지킨 것은 양말 한 켤레였고, 그 행동의 바탕에는 낯선 사람의 어려움도 외면하지 않은 관심이 있었다.
김 대장이 강조한 것처럼 봉사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주변을 살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곧바로 실천하는 데서 출발한다. 강서 허준런의 반환점에서 나온 작은 나눔은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는 봉사의 의미를 다시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