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한 알의 친절 운행

강서05번에서 만나는 작은 배려
서울 강서05번 마을버스에서는 승객에게 사탕을 건네는 정수희 기사(70)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 기사는 운전석에서 잠시 일어나 승객들에게 스카치캔디를 나눠준다. 사탕을 받은 승객들은 감사 인사를 건네고, 평범했던 버스 안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진다.
정 기사가 하루 운행을 위해 준비하는 사탕은 약 세 봉지다. 단순히 간식만 챙기는 것은 아니다. 명심보감의 글귀와 나태주 시인의 시 등을 직접 한 글자씩 필사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코팅한 뒤 갈색 봉투에 담아 승객에게 선물한다.
그가 사탕과 글귀를 준비하는 이유는 승객들이 버스를 이용하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이 건넨 즐거움이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2005년부터 이어진 사탕 나눔
정 기사가 승객에게 사탕을 나눠주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인천 부평에서 버스 운전을 시작했을 때부터다. 종점에서 다음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들은 남은 대기 시간을 자주 물었다. 그는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승객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줄 방법으로 사탕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기다림을 달래기 위한 작은 간식이었지만, 사탕 나눔은 21년 동안 이어졌다. 정 기사는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매일 사탕을 준비한다. 사탕 구매에 한 달 20만 원 이상을 쓰고 있으며, 롯데제과에서 스카치캔디 일곱 상자를 받은 일도 있다고 밝혔다.
정 기사에게 사탕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승객과 기사 사이에 감사와 웃음을 오가게 만드는 매개체다. 처음에는 하루에 스무 번 이상 “고맙습니다” 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목표였지만, 현재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감사 인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탕 한 알을 사이에 두고 기사와 승객이 짧게나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셈이다. 이러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정 기사의 선행을 소개한 영상은 70만 명이 본 것으로 전해졌다.
친절보다 먼저 지키는 안전
정 기사는 승객에게 사탕을 건넬 때도 안전을 가장 먼저 살핀다. 승객이 몰리는 혼잡한 시간에는 사탕을 나눠주지 않는다. 신호 대기 시간이 길어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를 활용하며, 승객들이 자리에 앉았는지 확인한 뒤 한 사람씩 사탕을 건넨다.
그의 배려는 운전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운행 시간을 확보해야 할 때는 미리 속도를 조절하지만, 승객이 타고 내리는 순간에는 서두르지 않는다. 급출발과 급제동을 줄여 승객의 몸이 앞으로 쏠리거나 넘어지는 상황을 막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정 기사가 생각하는 친절은 크고 특별한 행동이 아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먼저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승객도 편안해지고, 그렇게 생긴 좋은 마음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이다. 사탕을 나누는 행동과 안정적인 운전은 모두 승객의 하루를 편안하게 만들고 싶다는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다.
손으로 옮겨 적은 마음
정 기사의 친절은 사탕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승객에게 건넬 글을 직접 필사하고 코팅한다. 명심보감의 가르침부터 시인의 시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손으로 정성껏 옮겨 적은 글은 갈색 봉투에 담겨 필요한 승객에게 전달된다.
그가 특히 아끼는 글귀는 “일시분인즉 면백일지우(一時忿忍則免百日之憂)”다. 한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이다. 정 기사는 이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서도 실천하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의 필력은 서울시 공모전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았다.
버스 안에서 사탕과 필사 글을 받은 모녀의 사례도 있었다. 귀촌한 어머니와 터미널까지 배웅하던 딸 김현정 씨가 함께 버스에 탔고, 정 기사는 어머니에게 사탕을, 딸에게는 필사한 글을 건넸다. 모녀는 즐거운 표정을 보였으며 하차한 뒤 정 기사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탕과 글을 주고받은 버스 안에는 미소와 인사가 오갔다. 특별할 것 없던 이동 시간이 작은 배려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웃음이 다시 웃음으로 이어지다
정 기사가 말하는 선순환은 어렵지 않다. 자신이 승객에게 잘하면 승객의 기분이 좋아지고, 그 승객은 좋은 마음을 품은 채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웃으면 상대방도 웃고, 그 미소를 본 자신도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한 사람이 시작한 작은 친절이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주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탕을 받은 사람이 반드시 같은 사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웃어주거나, 가족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방식으로도 좋은 마음은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먼저 받은 선의를 다음 사람에게 전하는 ‘페이 잇 포워드’와 닮아 있다. 앞선 운전자가 뒤 차량의 통행료를 대신 내고, 이를 알게 된 뒤 차량의 운전자가 또 다음 차량의 요금을 내는 식으로 선행이 이어지는 방식이다. 정 기사가 바라는 것도 사탕 그 자체의 전달이 아니라, 사탕을 통해 생긴 따뜻한 마음이 다른 형태의 친절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21년째 계속되는 행복 운행
정 기사는 70세가 된 지금도 강서05번 마을버스를 운전하며 하루 세 봉지의 사탕과 여러 장의 필사 글을 준비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행복하면 주변 사람의 마음도 넉넉해지고 자신이 즐거우면 다른 사람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버스가 정류장을 떠난 뒤에도 승객의 손에는 사탕 한 알이 남고, 기사에게는 감사 인사가 남는다. 사탕은 먹으면 사라지지만 그 과정에서 오간 미소와 감사의 마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가능성을 남긴다.
2005년 시작된 정수희 기사의 친절 운행은 거창한 구호보다 일상 속 작은 실천이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전을 우선한 운전, 승객을 기다려주는 여유, 직접 준비한 사탕과 필사 글은 모두 한결같은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다.
강서05번 마을버스의 사탕 한 알은 짧은 이동 속에서 기사와 승객을 연결한다. 정 기사의 21년 나눔은 오늘도 감사 인사와 미소를 남기며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