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여음으로 채운 가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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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여음으로 채운 가을밤

청년예술인의 무대가 된 석촌호수 아뜰리에

2026년 10월 29일 목요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아뜰리에에서 창작 국악팀 CYAN(사이앤)의 단독 공연이 열렸다. 쌀쌀해진 가을밤에 마련된 이번 공연에는 송파구민을 비롯한 관객들이 자리해 가야금과 아쟁, 양금이 빚어내는 창작 국악의 울림을 함께했다.

이번 무대는 송파구가 유망한 청년예술인에게 단독 공연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예술인 지원 사업의 하나로 진행됐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 사업은 문화예술계의 미래를 이끌 청년을 발굴하고, 이들이 전문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활동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공연명CYAN 사이앤 가야금 프로젝트 Mono-di
일시2026년 10월 29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석촌호수 아뜰리에
참여작곡 윤영준, 가야금·작곡 조수민, 객원 아쟁 남궁재형

전통을 해체하고 다시 잇는 창작 국악

사이앤은 전통을 소재로 무대의 경계를 넓히기 위해 결성된 창작 국악팀이다. 가야금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소리를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하고, 그 위에 현대음악의 요소를 더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윤영준 작곡가는 사이앤의 음악적 특징을 익숙한 선율과 리듬, 국악의 색채 위에 현대적 미학을 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의 음색을 유지하면서도 오늘날의 감각으로 새로운 구조와 표현을 모색하는 것이 팀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공연 제목인 ‘Mono-di’는 단선율 양식을 뜻하는 ‘Mono’와 둘을 뜻하는 ‘di’를 결합한 이름이다. 음악적 배경이 서로 다른 작곡가와 연주자가 하나의 무대를 함께 만든다는 의미도 담겼다. 사이앤은 가을 특유의 쓸쓸함과 평온함, 계절의 여백을 가야금 단선율로 채운다는 구상 아래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가야금의 여음이 핵심 감상 지점

사이앤이 작품을 쓰며 중요하게 다룬 요소는 가야금의 여음이었다. 줄을 뜯거나 튕긴 뒤 남는 울림이 어느 방향으로 퍼지고 어떻게 미세하게 달라지는지에 따라 곡의 분위기와 성격도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공연에서는 연주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작품의 배경과 창작 과정도 소개됐다. 관객들은 곡에 담긴 이야기와 악기의 특성을 들은 뒤 연주를 감상하며 소리의 세부적인 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설명과 연주가 맞물리면서 낯설 수 있는 창작 국악을 한층 가까이 이해하도록 구성됐다.

첫 곡 순이 깨운 여린 생명력

무대의 시작은 가야금의 따뜻한 음색을 앞세운 ‘순’이 열었다. 한 올씩 정성을 엮는 듯 이어지는 선율과 음 사이의 여백이 공연장을 차분하게 채웠다. 가야금은 한 줄에서 한 음씩 연주하는 단선율 악기로, 하나의 음이 사라지고 다음 음이 시작되기 전까지 남는 공간도 음악의 일부가 된다.

‘순’은 봄에 막 돋아난 여린 싹, 그중에서도 가죽나물 순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공연 해설에서는 생명력이 강하고 스스로 열을 내 따로 보관해야 하는 가죽나물 순의 성질이 소개됐다. 작품에는 얄궂은 운명 속에서도 저마다 환하게 밝아지려는 여린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는 창작 의도가 전해졌다.

관객석은 첫 음이 울린 순간부터 조용히 가야금의 호흡을 따라갔다. 빠르게 의미를 제시하기보다 음과 음 사이에 충분한 여백을 둔 연주는 이번 공연이 내세운 가을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25현 가야금으로 표현한 Ricochet

두 번째로 연주된 ‘Ricochet’에서는 25현 가야금의 소리가 바람결처럼 이어졌다. ‘Ricochet’는 도탄, 곧 튕겨 나가는 움직임을 뜻한다.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의 특징을 탐구하며 쓴 작품으로 설명됐다.

현을 튕기는 동작에서 시작된 소리는 짧게 끊어지거나 공간으로 퍼지며 서로 다른 결을 만들었다. 같은 가야금에서도 연주 방식과 여음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 곡이었다. 제목이 가리키는 반동과 움직임은 연주자의 손끝과 현의 진동을 통해 무대 위에서 구체적인 소리로 드러났다.

봄의 성장을 그린 The Greeting

미끼 미노루의 원곡 ‘The Greeting’도 이어졌다. 공연에서는 앞선 곡 ‘순’에서 돋아난 여린 싹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봄의 정경을 표현한 곡으로 소개됐다.

잔잔하게 생명력을 드러낸 첫 곡에 이어 성장과 움직임이 강조되면서 공연의 흐름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야금의 전통적 음색을 바탕으로 선율의 확장과 역동적인 전개가 이어졌고, 공연장 안에는 우리 악기의 멋과 현대적인 감각이 함께 번졌다.

양금과 대아쟁이 쌓은 잔영

‘잔영’은 대아쟁과 양금이 함께 연주한 작품이다. 윤영준 작곡가의 첫 작곡곡으로, 사람들이 눈을 감고 곡을 들을 때 반짝이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고 소개됐다.

양금은 한국 전통악기 가운데 대나무 채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내며, 쇠로 만든 철현을 사용하는 악기다. 맑고 영롱한 양금의 음색은 먼 기억을 되짚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기에 낮고 짙은 대아쟁의 소리가 더해지면서 서로 다른 높이와 질감을 가진 두 악기가 긴 호흡으로 어우러졌다.

양금의 투명한 울림과 아쟁의 깊은 선율은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가을밤의 정서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두 악기의 소리는 겹겹이 쌓인 옛이야기를 펼쳐 보이듯 이어졌고, 관객들은 음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잔향을 따라갔다.

두 아쟁의 대비가 돋보인 출강

‘출강’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아쟁 소리를 들려줬다. 원래 거문고를 위한 곡을 새롭게 편곡한 작품으로 소개됐으며, 저음이 돋보이는 산조아쟁과 철아쟁이 각기 다른 음색을 펼쳤다.

산조아쟁의 둔탁하고 깊은 소리와 철아쟁의 맑고 서정적인 결이 맞물리면서 하나의 곡 안에 뚜렷한 대비가 생겼다. 두 악기는 각자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웠고, 국악기만으로도 폭넓은 음향과 감정의 층위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태엽처럼 생명력을 불어넣은 Wind up

공연 후반에는 조수민 작곡가 겸 가야금 연주자가 직접 작곡한 산조가야금곡 ‘Wind up’이 연주됐다. 이 작품은 1월부터 구상을 이어온 곡으로, 제목은 ‘태엽을 감다’라는 뜻을 지닌다.

조수민은 가야금 연주자가 줄을 뜯고 튕기는 행위를 멈춰 있던 물건에 태엽을 감아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에 빗대었다. 연주자의 손이 현을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소리가 깨어났고, 앞선 음에서 다음 음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삶이 계속되는 모습처럼 전개됐다.

연주자와 악기가 긴밀하게 호흡하는 장면은 곡의 구상을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줬다. 산조가야금의 선율은 빠르고 화려한 움직임과 섬세한 여백을 오가며 공연의 후반부를 힘 있게 이끌었다.

석촌호수 야경과 어우러진 마지막 장면

마지막 연주가 진행될 때 공연장 유리창의 커튼이 걷히면서 석촌호수와 롯데타워의 야경이 무대 안으로 들어왔다. 실내를 채우던 악기의 울림과 창밖의 가을밤 풍경이 겹치자 석촌호수 아뜰리에의 분위기도 새롭게 바뀌었다.

가야금의 화려하고 다양한 여음, 아쟁의 깊은 저음이 잦아든 뒤에도 관객의 박수는 이어졌다. 무대는 가을밤의 서늘함 속에 국악기의 따뜻한 울림을 남기며 마무리됐다. 공연 전 준비와 리허설을 거쳐 완성된 연주는 전통악기의 고유한 색채와 창작자의 현대적인 해석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과정을 보여줬다.

청년예술인 지원이 만든 창작의 기반

사이앤은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팀이다. 활동 초기의 예술단체에는 단독 무대에 설 기회 자체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번 지원 사업은 공연장을 확보하고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는 것이 참여 예술인들의 설명이다.

조수민은 석촌호수 아뜰리에에서 공연하게 된 점과 포스터 제작, 홍보 지원 등을 언급하며 음악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청년예술인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무대에서 펼치고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기회였다는 소감도 전했다.

송파구의 청년예술인 지원은 창작자가 작품에 전념하고 시민은 가까운 생활권에서 새로운 문화예술을 접하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날 공연은 단순한 발표 무대를 넘어 신생 창작 국악팀이 음악적 방향을 구체화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자리가 됐다.

음원과 전자음악 결합을 향한 다음 목표

사이앤은 ‘Mono-di’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음원 발매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2027년 음원 발매를 목표로 작업할 계획이며, 전자음악을 배우고 있는 윤영준 작곡가의 역량을 바탕으로 국악기와 전자음악을 결합한 협업도 시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통을 고정된 형식으로 두지 않고 가야금의 소리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온 사이앤의 작업은 향후 전자음악과의 결합을 통해 또 다른 형태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다만 그 중심에는 이번 공연에서도 일관되게 강조된 가야금의 울림과 여음, 전통적 소재가 놓여 있다.

5월부터 이어진 선정 예술인들의 공연은 11월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이번 사이앤의 무대는 청년예술인의 창작 역량과 전통음악의 확장 가능성을 함께 확인한 자리였다. 가야금의 단선율이 만든 여백과 여러 국악기의 조화는 석촌호수의 가을밤에 길고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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